최근 금융 시장에서 조용하지만 뜨겁게 떠오르는 투자처가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 프랑입니다. "스위스 프랑 예금이 반년 새 2배나 늘었고, 스위스 프랑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추가해달라는 수요가 늘고 있어 조만간 잔액 기준 1,000억 원을 넘어설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입니다.
왜 하필 스위스 프랑일까요? 세계 경제의 불안정 속에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스위스 프랑에 쏠리는 이유와, 이러한 상황이 스위스 중앙은행에 어떤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스위스 프랑의 인기가 높아지는 가장 큰 배경에는 미국 달러화의 부진이 있습니다.
최근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 일 엔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스웨덴 크로나, 캐나다 달러)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가 올해 상반기 10.8%나 하락했습니다.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금 본위제가 무너지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된 1973년 상반기 이후 가장 크게 하락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특히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화 가치는 14% 넘게 떨어졌습니다.
과거 '달러를 모으겠다'는 확고한 수요가 이제는 스위스 프랑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만 하더라도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무역 전쟁으로 미국 이외 국가들이 타격을 입고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몰릴 것이라는 예측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관세 부과가 불확실성을 키웠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대규모 재정 적자 확대, 연준의 독립성 약화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견고하고 안정적인 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스위스 프랑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통화 중에서 유독 스위스 프랑이 안전자산으로서 각광받는 걸까요? 스위스의 독특한 경제적, 사회적 특성 때문입니다.
스위스는 전통적인 유럽의 피난처입니다. 인구 9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1인당 GDP가 약 11만 달러로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입니다. 미국이 1인당 GDP 약 9만 달러로 7위, 우리나라와 일본이 4만 달러 중반인 30위권 중반에 위치하는 것을 감안하면, 스위스의 경제력은 상당합니다. 이러한 막강한 경제력이 스위스 프랑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스위스는 UBS나 크레디트스위스 같은 글로벌 은행, 보험사가 밀집한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입니다. 이는 스위스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여, 국제 자본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정밀기계와 화학, 시계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조업 기반의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노바티스나 로슈 같은 세계 3대 제약 기업을 보유한 제약 바이오 강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탄탄한 산업 기반은 스위스 경제의 안정성을 더욱 높여줍니다.
스위스는 EU 비회원국이지만 40개국 이상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이 매우 용이합니다. 또한, 영세 중립국이라 외교적인 리스크가 굉장히 적고, 법치주의가 확립된 국가라 사회적 안정성도 높습니다.
이러한 견고한 안정성이 뒷받침되다 보니, 스위스 프랑은 주요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 무역 전쟁이 고조되었던 지난해 4월 초부터 7월 초까지 주요국 통화 가운데 미국 달러 대비 가장 많이 오른 화폐가 바로 스위스 프랑이었습니다.
스위스 프랑은 단순히 통화의 개념을 넘어, 글로벌 불확실성 시대에 자산을 보존하고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스위스 프랑의 강세는 투자자들에게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정작 스위스 중앙은행(SNB)의 고민은 매우 깊어지고 있습니다. 자국 통화 가치가 다른 외국 통화보다 지나치게 상승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통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입 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속될 경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현상) 우려를 키웁니다. 디플레이션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스위스는 수출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 국가입니다. 자국 통화 가치가 강해지면 스위스 제품의 해외 판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져 수출 경쟁력이 약화됩니다. 이는 스위스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지난달 스위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에서 0.25%포인트 낮춘 0%로 조정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6번째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입니다. 5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디플레이션 압박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현재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가져가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프랑의 강세는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과 달러화의 약세라는 큰 흐름 속에서 스위스가 가진 독보적인 안정성과 신뢰도가 빛을 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양면에는 그림자가 있듯이, 스위스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의 과도한 강세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수출 경쟁력 약화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스위스 프랑이 매력적인 안전자산임에는 틀림없지만,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국제 경제 상황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신중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스위스 프랑이 앞으로 어떤 흐름을 보일지, 그리고 스위스 중앙은행의 고민이 어떻게 해소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번 글, 어떠셨나요? 스위스 프랑 투자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